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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기는 게임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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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수성가형 여성 부호(富豪) 1위로 꼽힌 이수영씨는 뉴스의 인물임에 틀림없다. 올초엔 전신마비 장애를 극복하고 뉴욕검찰 부장검사 자리에 오른 정범진씨와 결혼을 발표했으며 최근에는 "한차례 결혼했고 17살의 아들이 있다"고 밝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일과 사랑을 양 손에 쥔 벤처 업계 신데렐라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나는 이기는 게임만 한다> 는 그의 자전적 에세이다. 발레리나에서 게임회사의 창업자로, 성공의 정점에서 물러나 다시 창업의 길로, 드라마 같은 결혼발표까지, 이수영의 삶은 역동성 그 자체이다. 저자를 보면 그 역동성은 과감한 '떠남'으로 시작되었다.

1965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사람들에게 '애살맞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애살맞다'는 '샘이 많다'의 경상도 사투리인데,'똑똑한 편은 못 되었으나 샘이 많은 아이'였던 것이다. 피아노, 그림, 연극, 웅변 그리고 무용…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 했고, 시작한 일은 끝을 봐야 직성이 풀렸다. 이런 억척 소녀의 욕심이 사업가 이수영의 밑바탕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고전 무용에서 발레로 전공을 바꾼 고등학교 시절, 연고지 하나 없는 낯선 타향에서 혼자 하숙하면서 광주 학생들의 발레 비법을 알아냈다. 그 덕분에 세종대 무용과에 수석 합격했으나 입학 후 몸소 체험한 국내 무용계의 현실은 기대와 달리 열악했다. 그래서 졸업 후 그녀는 미국 유학의 길을 택하게 된다.

현대무용으로 유명한 뉴욕의 마서그래엄에 들어갔지만 딱 고3 수준의 영어 실력과 서양 사람들에 비해 신체적으로 불리한 조건 때문에 유학생활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타고난 오기와 욕심으로 노력한 결과 내내 장학금을 탈 수 있었고, 여러 공연에도 출연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마서그래엄을 졸업하고 뉴욕대에서 안무에 관한 석사 과정을 밟는 동안 단편영화에도 출연하는 등 예술적 끼를 마음껏 발휘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문득 '한 달에 천만 원씩 벌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귀국 후 무용을 접목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다가 문득 '발레게임'을 생각해낸다. 이미 무용단을 만들어 공연을 하고 대학에서 영어 강의도 하고 방송국에서 리포터로 활약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발레게임' 아이디어 하나를 들고 무작정 'M소프트'라는 게임회사를 찾아간다. 담당자는 그녀에게 게임 기획서를 만들어 오라고 주문했고, 일주일을 끙끙대다 포기할 무렵, M소프트에서 연락이 온다. 그녀가 원했던 게임기획이 아니라 해외마케팅 업무를 맡아보라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게임회사와 인연을 맺게 되어 최초로 국내 게임을 해외에 수출하는 성과를 올리게 되었다.

나는 회사의 이름을 웹젠으로 정했다. 젠은 선(禪)의 일본식 발음으로 내가 참 좋아하는 말이다. 마음을 다스리게 하는 단어라고나 할까. 뿐만 아니라 인터넷 비즈니스를 함축하는 뜻이 담겨 있기도 하다. 이 같은 웹(WEB)과 젠(禪)이 만났으니 직역하자면 '인터넷 도사'라는 뜻이 되기도 하고, 인터넷을 통해 다른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는 찬란한 의지가 담긴 이름이기도 했다. 우리가 개발하고자 하는 게임이 다름 아닌 온라인 3D 게임이었으므로 인터넷 도사라는 뜻의 웹젠은 적절하게 맞아떨어지는 셈이었다.

IMF를 겪고 회사가 어려워지자 외국계 컨설팅 회사로 자리를 옮겨 금융과 IT부문의 투자 심사역을 담당하게 된다. 그곳에서 '돈'과 '사업'에 대해 눈을 뜨게 되고, 이제는 자신의 사업을 시작해야겠다고 아이템을 물색했다. 어느 날, 세 명의 게임 개발자가 그녀를 찾아온다. 게임산업의 미래는 매우 밝았고, 그들의 실력도 익히 알고 있었으므로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웹젠>이라는 회사를 설립한다. 2000년 봄의 일이었다.

2001년 5월에 선보인 국내 최초 3D 온라인 롤플레잉게임 '뮤'는 대박을 터뜨렸다. 시장점유율 80%에 달하는 리니지의 아성을 깼을 뿐만 아니라 무서운 속도로 동남아시아 시장에 진출하고 코스닥에 입성시키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2002년 11월, 밤낮없이 열정을 불사르던 <웹젠>을 사임하고 <마이 클럽 닷 컴>의 대표이사를 맡게 된다. 그러나 마이 클럽 닷 컴에서 역시 8개월 만에 사임한다.

지금에야 하는 말이지만 여자로 성공한다는 것에는 난관이 많은 편이었다. 능력을 검증할 수 있을 만한 좋은 결과가 눈앞에 있어도 여자이기 때문에 믿기 어렵다는 식의 시선을 느낀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남자와 여자는 근본적으로 다른 성향을 갖고 있지만, 단순히 '여자가 뭘 알겠어' 하는 식의 시선은 얼마나 불합리한 것인지, 여자는 분명 남자와 다르지만 총체적인 상황 판단 능력이나 극단적 결론을 피해가는 화합의 면에서는 오히려 여자의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항상 '여자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냉정하고 정확해야 한다'는 소신을 새기면서 살고 있다.

사업 초기에 자금을 모을 때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했다는 사실을 숨겼다고 한다. 최고경영자의 출신 학력 등으로 기업을 판단하는 편견이 싫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는 "여성들에게 세상은 여전히 불공평하며 수없는 난관이 널려있지만, 도전 정신으로 물러서지 말고 계속 승부를 벌여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올해 초, 전신마비의 장애를 극복한 뉴욕지검 정범진 검사와의 결혼 발표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책에서 정범진 검사와의 만남에서부터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풀어놓았다. 지면관계상 신문이나 잡지에서는 하지 못한 이야기들, 예컨대 정범진 검사와의 소소한 에피소드부터 사랑과 결혼에 대한 가치관, 그들이 꿈꾸는 미래 등에 대한 이야기도 자세히 담겨 있다. 현재 엔터테인먼트 포탈 사이트 <이젠>이라는 회사의 대표로 오픈을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책 부록으로 웹젠 설립 당시 아무 것도 없이 4억원의 투자 유치를 가능하게 했던 사업계획서와 위험도 분석 자료를 첨부했다. 치밀한 계획과 열정, 비전만 있으면 자기 자본 없이도 훌륭히 사업을 시작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꿈을 향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오기와 집념까지 더해 죽기살기 매달리는 그녀의 열정은 늘 이기는 게임이 되게 했다.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던 높은 고지에 다다를 때의 희열이란... 그것은 해냈다는 벅찬 감동이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 맛에 중독돼 마치 더 높은 산을 오르는 산악인들처럼 새로운 도전을 반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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