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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 대한 고전적 정의는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이다. 하지만 세상의 어느 학문이 지혜나 지식을 멀리하느냐고 되물으면 난감해진다. 이때 할 수 있는 대답은 철학은 ‘사유’라는 것이다. 사유는 자연과학의 ‘업적’과 달라서 경계를 단박에 가로지른다. 이를테면 자연과학은 선각자들의 노고의 결과를 바탕으로 그 위에 새로운 돌탑을 쌓아가는 과정이지만, 철학은 선지식들이 그동안 쌓아온 성과를 ‘전복’하는 학문이다. ‘진리’에 접근하지 않는 한 철학의 성과는 늘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탓이다. 하지만 진리는 신의 영역이다. 인간은 그저 진리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것을 추론하고 염탐하며 진리의 언저리를 맴돌 뿐이다. 짐짓 우리가 진리에 가깝다고 여기는 것을 가리켜 윤리 혹은 도덕이라 부르지만 그것이 불완전하다는 것은 철학자 스스로가 알고 있다. 그래서 철학은 윤리학의 범주를 넘어서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돈’이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 되는 것은 드물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가지길 원하지만, 모두가 그 욕망을 드러내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돈은 사람의 노동을 살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에 복종하는 인간으로부터 영혼과 마음까지 빌릴 수 있다. 그렇게 보면 돈은 자본주의의 꽃이요, 자본주의 혈관을 흐르는 피다. 하지만 이 중요한 돈이라는 물건에 대해 아무도 제대로 된 철학적 사유를 시도하지 않았다. 자고로 철학이란 하늘에서 싸는 고고한 구름 똥일지언정 삶을 구성하는 재료들을 직접 사유의 대상으로 삼거나 논하지 않아왔던 것이다. 드물게 ‘조르주 바타이유’ 같은 이가 ‘섹스’를 대상으로 삼고,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느 드 보바르’가 온몸으로 ‘실존’을 부르짖었다. 그렇다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그들이 탐구하는 것은 ‘인간’이었을 뿐, 변기나 세면대, 장식장, 술, 담배와 같은 도구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늘 그 도구들과 함께한다. 더구나 농경시대 이후 인간의 잉여가 다루어지는 것이 경제고, 그 경제를 이루는 기본 축이 ‘돈’임에도 불구하고 철학이 애써 돈을 외면해 온 것은 놀라운 일이다. 세상의 모든 질서에는 철학의 사유가 끼어든다. 이를테면 법철학, 의학철학, 언어철학, 과학철학이 그렇다. 한데 ‘돈의 철학’이 없다는 것은 돈이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없거나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이 말에 반론을 제기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돈의 철학은 위대한 철학자 ‘막스 베버’가 이미 방대하게 다루었고, ‘토머스 모어’의 사유나 나아가서는 ‘카를 마르크스’의 사상 역시 돈에 대한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이의를 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경제체제, 즉 ‘질서’에 대한 담론을 논했을 뿐, 돈 그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다. 돈은 그 자체로서 사유의 대상물 취급을 받아 마땅함에도 철학은 변죽을 울리며 그 주변만 맴돌고 있는 것이다.
이에 통렬한 어퍼컷을 날린 철학자가 하나 있으니 바로 ‘게오르그 짐멜’이다. 짐멜은 독일어권 철학자 중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철학자다. 그는 거대담론이 아닌 생활철학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았다. 구름 위에 앉아서 관념의 꽃비만 날리는 고고한 철학자들과 달리 인간이 일상적으로 당면하는 사물들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 결과 그의 ‘돈의 철학’이 나왔다. 어쩌면 짐멜은, 돈 그 자체를 사유로 삼은 거의 유일한 철학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전개하는 돈에 대한 철학은 예상보다 호의적이다. 돈이란 기본적으로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은 돈을 벌고 그것을 축적함으로 해서 인간성을 회복한다고 한다(인간화). 인간은 돈이라는 저장 수단이 없을 때면 상시로 일을 했지만(탈인간화), 반대로 돈을 바탕으로 가치 저장을 하면서부터 문화와 예술, 나아가서는 오락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을 일하는 존재인 호모 라버스(Homo labors: 노동하는 인간)에서 노는 존재인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유희하는 인간)’로 나아가게 하는 결정적 동인이었다고 말한다.
결국 돈은, 철학적 입장에서 바라보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지만, 정치·사회학적 입장에서 바라보면 우리를 속박하는 것이다. 실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결론은 한 가지다. 돈은 어떻게 벌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간성을 복구하기도 하고 인간성을 멸실하게도 한다. 짐멜의 사유가 돋보이는 이유가 바로 그 점이다. 학문은 세태에 아부한다. 철학자의 사유 역시 돈에 대한 정치·사회학적 은원들을 따지고 파헤치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그는 철저하게 돈을 ‘대상’으로 사유한다. 그래서 그의 철학이 뜻밖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물론 그의 철학이 필자가 쓴 몇 줄의 글로서 정리 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늘 돈을 다루면서 돈 그 자체에 대해 별로 사유해본 적이 없다는 점을 떠올리면, 그의 철학을 통해 돈의 의미를 한 번쯤 헤아려보는 것도 상당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특히 돈을 저장하고 매개하고 가치 증식하는 은행의 경우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 칼럼은 돈에 대한 철학에서, 돈을 다루는 법, 돈에 대한 가치관, 위험 관리 등으로 이어 나갈 생각이다. 첫 회인 ‘철학’ 부분은 아무래도 난해할 수밖에 없지만, 그 역시 첫 회의 특성이기도 하다. 다음부터 다루어질 주제들은 다양한 인문학적 사례를 위주로 서사 형식으로 풀어갈 예정이다. 첫 회에서 나타난 필자의 고질적 현학성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너그럽게 이해해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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