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사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이 사태에서 궁극적으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그 위대하던 기업이 이렇게 추락하게 된 데는 당연히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근원에는 이념적 요인이 자리잡고 있다. 바로 ‘기업은 왜 존재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다.
기업은 왜 존재하는가? 여기에 대한 답은 전통적으로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s capitalism)’라는 말로 표현되는 답이고 다른 하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s capitalism)’라는 답이다. ‘주주자본주의’라는 것은 한 마디로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는 주주에게 최대한의 이익을 남겨주기 위해서라는 이론이다. 미국에서 가장 공감을 많이 불러 일으킨 주장으로 그 유명한 잭 웰치같은 경영 구루도 한 때 이 이론을 신봉하였다.
그에 비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를 단지 주주 뿐 아니라 직원, 납품업자, 채권자, 소비자 같은 이해관계자들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이론은 주로 유럽에서 공감을 많이 얻어 왔다. 이 두 가지 이론은 각기 미국식 모델과 유럽식 모델로 팽팽히 맞서며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 경제,경영학계의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었었다.
기업은 주주를 위해 존재한다?
주주자본주의는 일견 일반인들에게 별로 어필하지 않는 이론이다. 왜냐하면 이미 부자인 자본가(주주)들의 이익을 가장 중요하게 추구해야 한다는 것은 일반인이 볼 때 너무 편향적이다. 그러나 이 이론이 맹위를 떨쳤던 이유는 나름대로 제법 그럴듯한 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이야기인가? 기업이 주주에게 한 푼이라도 이익을 남겨 주기 위해서는 그 이 전에 모든 이해관계자, 예를 들어, 직원, 납품업자, 채권자들을 먼저 챙겨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직원에게는 월급을 주고 납품업자에게는 납품대금을, 채권자에게는 이자를 다 챙겨 주고 남는 것만을 주주가 가져가기 때문에 그것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주주는 자신의 소중한 돈을 투자해 기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자칫 부도가 나면 전 재산을 날릴 수도, 패가망신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큰 리스크를 지는 사람이다. 그런 부담을 지는 주주들에게 그만한 대우를 해 주어야 돈 있는 사람들이 회사에 투자할 생각이 난다는 것이다. 투자가 늘어야 일자리도 많이 창출되고 그래야 사회 전체의 떡이 커진다는 것이다. 어떤가? 그럴 듯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런 논리에도 불구하고 주주자본주의가 세계적으로 완벽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한 이유는 그것이 자칫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쥐어 짜는 논리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주에게 많이 남겨 주기 위해서는 납품업자를 쥐어 짜야 하고 직원들에게도 최대한 인색해야 한다. 이 이론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기업은 이해관계자를 위해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론은 어떤가? 이는 주주자본주의론에 비해 일반인들에게 훨씬 더 어필한다. 부자인 주주들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챙기기 보다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이익과 ‘동일한’ 차원에서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주주들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일개 이해관계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이론은 한 마디로 기업을 ‘누구의 것’으로 보기 보다 사회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공기로 보는 면이 강하다.
그러나 이 이론 또한 그럴듯한 논리적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기업을 사회의 것으로 보는 순간 돈 가진 사람들의 창업 열기가 큰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기업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택하는 그 엄청난 리스크가 제대로 인식되지도 또 보상받지도 못할 가능성이 커지면 누구도 투자하여 창업하기를 주저할 것이다. 창업의 열기가 식으면 결국 가장 큰 피해자는 사회, 즉 일반 시민이다. 새로운 일자리가 그만큼 줄기 때문이다.
또,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강성 노조에게 활동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 면이 있다. 노조가 자신들의 이익을 주주의 이익만큼 생각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 바로 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론를 적극 활용했던 것이다. 노조 활동이 합리적 수준을 넘어 과도하게 활발해진다는 것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가장 융성했던 유럽에서 2차대전 후 경제 성장이 미국이나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현저하게 낮았다는 점들이 이 이론을 세계적으로 확산시키는데 큰 장애가 되었다.
도요타 사태로 결정적 타격을 받은 주주자본주의
이처럼 주주자본주의도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도 어느 것 하나 완벽하게 인정받지 못한 상황에서 최근 주주자본주의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바로 금융위기였다. 최근의 금융 위기는 사실상 맹목적인 주주자본주의의 추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데 대해 이론이 없다. 월스트리트 금융 회사들이 주주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무차별적으로, 무책임하게 몰두한 결과가 바로 금융위기였다는 것이다. 잭 웰치조차 자신이 선봉이 되어 주주자본주의를 열렬히 추구했던 것은 실수였다고 인정하게 되었다.
이번 도요타 사태는 세계 금융위기로 타격을 받은 주주자본주의에 치명타를 날린 사건이다. 도요타 사태도 궁극적으로 과도한 주주자본주의 추구의 결과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요타는 원가 절감을 위해 납품업자와 공장을 쥐어 짜기 시작한 2000년부터 3년간 원가를 무려 30% 줄였고 그 이후에는 낭비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부품 수 축소, 공정 단순화 등을 실시해왔다. 최근에는 엔고로 적자경영에 시달리자 지난해말 또다시 부품업체에 단가 인하를 공식 요구하며 3년간 30% 원가 절감을 선언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품질 문제가 생겨 버렸던 것이다.
결국 도요타 사태는 궁극적으로 주주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남겨 주기 위해 납품업자를 너무 쥐어 짠 결과이다. 물론 도요타 경영진은 납품업자를 쥐어 짠 것은 원가를 낮추어 소비자들에게 더 싼 가격으로 자동차를 공급하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할 지 모르지만 도요타가 그 동안 원가 절감액에 상응해 판매 가격을 낮추는 노력을 했었다는 증거는 없다. 도요타 경영진이 주주자본주의를 신봉한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한 적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그들의 행태를 보면, 즉 부품에 하자가 있다는 증거를 발견하고도 근원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미봉책으로 일관했다는 여러 가지 보도들을 볼 때, 그들이 결국 주주자본주의 이념에 의해 이끌려 왔다는 결론이 충분히 가능하다 보여진다. 결론적으로 도요타 사태로 주주자본주의가 설 자리는 앞으로 더욱 좁아질 것이다.
21세기의 기업 이념은 ‘고객자본주의(customer capitialism)’
세계는 지금 주주자본주의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뛰어 넘는 새로운 기업 이념을 모색하고 있다. 그 새로운 이념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뚜렷한 대안은 바로 ‘고객자본주의’라는 것이다. 고객자본주의란 한 마디로 기업은 주주도, 이해관계자 일반도 아니라 ‘고객’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는 고객에게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주주자본주의가 주주, 채권자, 납품업자, 직원, 주주, 고객 등 이해관계자 중 주주를 우선 순위의 맨 위에 올리는 개념이라면 고객자본주의는 ‘고객’을 우선 순위의 맨 위에 올리는 것이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이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동일한 우선순위에서 고려하는 것이라면 고객자본주의는 고객을 그들 모두 보다 한 발 앞선 곳에 위치시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고객을 가장 높은 우선순위에 올려 놓으면 다른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가장 큰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고객이 만족하면 더 많이 살 것이다. 그러면 매출이 증가한다. 한 마디로 기업의 이해관계자들이 나눌 수 있는 떡이 커지는 것이다. 그 떡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기준도 고객을 기준으로 하면 가장 좋은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
- 원가를 줄여서 가격을 낮추는 것이 고객에게도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도요타가 했던 것처럼 품질에 악영향을 줄 정도로 원가를 후려쳐서는 안된다는 원칙이 자연히 수립된다. 더욱이 부품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가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은폐 내지 무마하려고 시도하는 것 같은 행위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 직장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직원이 좋은 물건을 만들거나 고객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자연히 고객에게 주는 좋은 서비스를 헤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직원들에 대한 처우를 결정해야 한다.
- 그렇다면 주주는 손해를 보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고객에게 가치를 지속적으로 주는 기업은 반드시 고객의 존경을 받는다. 기업의 역사를 살펴 보면 영속하고 번영하는 기업은 예외없이 고객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기업이었다. 고객의 존경을 받으면서 주가가 오르면 그 과실을 가장 크게 따먹는 사람이 바로 주주이다.
한국 기업, 고객자본주의의 이념하에 새로 태어나야
기업은 한 마디로 고객을 위해 존재한다. 고객을 위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기업은 존재의 의미가 없다. 야쿠자도 대부분 기업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존재의 당위성이 없는 이유는 그것이 고객에게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위대한 기업은 고객에게 거대한 가치를 창출해 준 기업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 존속한 기업은 가장 오랫동안 고객에게 가치를 창출해 준 기업이었다.
이제 기업들은 스스로를 보는 기준을 바꾸어야 한다. 또 기업의 모든 이해관계자들은 기업을 보는 기준을 바꾸어야 한다.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고객에게 최고의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모든 기업 활동의 기준이 거기에 맞춰져야 한다. 이번 도요타 사태를 계기로 우리 기업들과 그 모든 이해관계자들은 ‘ 고객자본주의’라는 이념 아래에서 새로 태어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