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들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이들이 사회적 부담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사회적 우려는‘베이비붐 세대가 노년기에 진입하면서 세수 감소와 재정악화, 부양부담 증가 등 각종 사회경제적인 문제가 대두될 것’이라는 예상으로 집약된다. 그러나 베이비붐 세대가 가지는 잠재력에 주목하면서 당사자 및 사회가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이들 거대한 인구 집단이 저출산ㆍ고령화 시대의 소중한 사회적 자원이 될 수도 있다는 긍정적 전망 또한 존재한다.
삶에 대한 만족도 높고, 미래에 대해서도 낙관적
과연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에 대해서는 어떤 전망이 가능할까?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전후 체계적 교육을 받은 첫 세대로 3/4이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높은 학력을 가지고 있다. 산업화를 이끈 주역으로서의 자긍심과 노력의 열매인 성취감의 경험을 가진 세대이기도 하다.
베이비붐 세대의 이러한 특성은 최근 필자가 수행된 연구결과에서 잘 드러나는데, 대체로 이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고 미래에 대해서도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직업 만족도가 높고 일은 생계수단의 의미를 넘어서서 자신의 꿈과 가치를 실현하는 창구의 의미를 가진다. 은퇴 후에도 사회에 기여하는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욕구 또한 강하다. 친구 중심의 비교적 활발한 사회적 연계망을 가지고 있으며 비율이 높지는 않지만 자원봉사와 같은 사회 참여적 활동(civic engagement)에도 관여하고 있다.
이들의 전반적 삶의 양상은 그들의 부모세대인 현재의 노인들과는 차이가 나는 모습으로, 베이비부머들이 보유한 이러한 인적ㆍ사회적 자원을 고려해 볼 때 노년기에도 잘 통합된 건강한 모습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단, 이러한 낙관적 전망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베이비부머들의 발달적 잠재성을 사장시키지 않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물론 베이비부머 당사자들의 노력도 중요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외국의 경우 베이비부머들은 퇴직 후에도 재취업, 징검다리 직업(bridge job; 직장에서 물러난 뒤‘완전히 은퇴’할 때까지 10년 이내에 파트타임이나 풀타임으로 하는 일자리)등 경제활동을 계속하며 노동시장에서 완전 은퇴까지 약 20여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따라서 직업 중심적 삶을 살아온 베이비부머들의 삶의 연속성을 유지하고픈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도록 노동시장의 다각화와 유연화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중간관리급 이상의 중장년층을 심층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금전적 보상보다 사회적 의미와 가치가 크고 자신의 삶과 직업 경력을 유지시킬 수 있는 일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쌓아온 경험과 전문성이라는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고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고용시장에서 창출되지 않기 때문에 자격증 취득 등 새로운 경력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중장년들이 일자리를 모색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사회적 비용만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현재 노인을 위한 사회적 일자리 사업의 경우 주로 저소득층 위주로 돼 있는 현실에서 교육수준이 높은 베이비부머들의 욕구를 반영할 수 있도록 고용정책이 세분돼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자원봉사로 촉진할 정책ㆍ프로그램 필요
한편 ‘생산성’의 의미를 경제활동에 국한시키지 않고‘사회에 대한 다양한 방식의 기여’를 포괄하는 의미로 재개념화하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구나 일본에서는 중ㆍ노년기의 생산성을 표현하는 가장 효율적인 활동으로서의 자원봉사 참여가 활성화되고 있다. 젊은 노인층이 초고령 노인을 돌보는 ‘노노케어’(老老 care) 프로그램이나, 노인이 유치원이나 초ㆍ중학교에서 자원봉사하는 세대통합 프로그램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베이비부머들의 자원봉사 참여를 위해서는 단순한 활동에 주로 집중된 노인의 자원봉사활동과 차별화되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으로 지적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직장이나 지역사회를 통해 베이비부머들을 자원봉사로 유인할 수 있는 정책이나 프로그램들이 필요하다. 선행연구에 의하면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노인들의 경우 노년기에 진입해 비로소 자원봉사를 시작하는 비율은 그리 높지 않고 오히려 젊어서 자원봉사를 하여본 경험 여부가 중요한 참여요인인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베이비부머들의 노년기 자원봉사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중년기에 봉사활동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참여동기가 비자발적 성격이 강하고 참여 여부가 구조적으로 제한되는‘일’에 비해 자원봉사는 자발적 성격이 강하다. 그런 면에서 자원봉사자들 스스로가 의미 있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수준과 유형의 프로그램 및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활성화의 관건이라고 하겠다. 다양한 선택지 위에서 자원봉사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흥미와 기회가 잘 매치될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위치짓는 노력이 주어질 때 자원봉사를 통한 사회참여 활성화가 이뤄질 것이다.
서구의 경험에서 주목할 점은 힘든 과업이 부과되는 자원봉사에는 참여자가 적지만 동시에 너무 쉽고 반복적인 활동이나 흥미롭지 못한 활동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에 대한 참여 또한 높지 않다는 점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교육수준이 높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자신이 지역사회와 후속세대를 위해 실제적 기여를 했다는 보람을 느끼게 하는 도전적 성격의 과제와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이들의 자원봉사를 통한 사회참여의 활성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본다.
베이비붐 세대가 다양한 선택에 익숙한 소비자로서의 특성을 가진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사회참여에 관해서도 다양한 몰입ㆍ개입의 수준 및 시간투자(장ㆍ단기 프로그램), 과제의 난이도 등을 가지는 선택지를 제공해 각자의 니즈와 동기에 적합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거대한 인구집단인 베이비붐 세대가 사회적 자산이 되기 위해서는 중ㆍ노년기의 삶에 대한 새로운 비전의 한 측면으로 적극적 사회참여 기회를 제시하는 사회적 노력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한경혜 서울대 생활과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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