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정부와 은행은 가계부채 문제, 부동산 버블 붕괴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될 때마다 우리나라는 '안전지대'에 있다고 큰소리쳐왔다. 이들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로 내세운 것 중 하나가 주택 담보인정비율(LTV) 제도였다.
집을 살 때 은행에서 담보가치의 절반(40~60%)가량만 돈을 빌려주도록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집값이 반 토막 나더라도 은행의 부실채권이 대량 발생해서 금융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집값이 고점 대비 40% 이상 떨어지는 아파트가 등장하면서 사정이 바뀌고 있다.
수도권 외곽 지역 등에서는 집값이 급락해 떨어진 집값을 기준으로 하면 LTV가 70~80% 수준으로 올라간 경우가 나오고 있다. 경매로 넘어간 물건 중에서는 LTV가 100%를 넘긴 '깡통 아파트'도 등장하고 있다. 집을 팔아도 은행 대출을 못 갚는다는 이야기다.
회사원 A씨(45)는 2009년 7월 경기도 고양시의 5억2500만원짜리 아파트 한 채를 샀다. 당시 집값의 60%인 3억1500만원을 은행에서 대출받았다. 그런데 지금 그 집이 4억3000만원까지 값이 떨어졌다. 3년 만기가 닥쳐 대출을 연장하려 하니 LTV가 문제가 됐다.
떨어진 집값으로 계산해 보니 LTV가 73%가 됐고, 은행에선 금융 당국 가이드라인인 60% 이상은 대출을 연장해 줄 수 없다는 전갈이 왔다. 집값의 60%인 2억5800만원만 대출 연장이 가능하고, 한도를 넘어선 5700만원은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A씨는 "빚을 갚기 위해 또 빚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울상을 짓고 있다.
A은행 관계자는 "김포, 파주 신도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리먼 쇼크 전인 2007년 분양 당시엔 LTV 50~60% 선에서 대출이 나갔는데, 이후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LTV 비율이 80~90%까지 올라갔고 단지에 따라서는 100%에 도달한 곳도 있다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송도와 용인 쪽도 LTV 비율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집값이 더 떨어지면 이런 사례가 더 늘어날 것이고, 주택대출이 부실화될 가능성이 더 커진다. '부동산 버블 붕괴→주택대출 부실화→은행 파산→금융위기'로 이어진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가 한국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방패'로 여겼던 LTV, '창'으로 변신
작년 8월 현재 전국의 주택담보대출 LTV 비율은 47%여서 전체적으로는 안전한 편이다. 하지만 집값이 급락하는 수도권 외곽과 일부 지역 아파트에서 한국판 서브프라임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B은행이 지역별로 2009년 5월과 올 5월 현재 LTV 비율을 비교한 결과, 경기도 김포시 주택담보대출의 평균 LTV가 50%에서 57%로 7%포인트 올라갔다. 경기도 동두천시와 양평군도 5월 현재 평균 LTV가 각각 56%와 51%로 3년 전에 비해 각각 6%포인트씩 올라갔다.
올해와 내년에 걸쳐 전체 주택담보대출 305조원의 46%가 만기가 되거나 거치 기간(원금은 갚지 않고 이자만 갚는 기간)이 끝난다. 우리·국민·신한·하나·농협 등 5대 시중은행에서 올해 말까지 만기가 돌아와 일시 상환해야 하는 주택담보대출은 23조8000억원에 이른다. 집값 하락을 이유로 은행들이 대출자들에게 원금의 10% 정도를 상환하라고 하면 총 2조3800억원을 갚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