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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건불 지폐와 가랑잎-이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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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병마와 싸우면서도 ‘땅에서 하늘처럼’ 살다간 故 이민아 목사

 

"네가 애통하고 서러워할 때 내 머릿속의 지식은 건불에 지나지 않았고, 내 손에 쥔 지폐는 가랑잎보다 못하다는 걸 알았다"- 이어령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안타까운 것도 없다. 남겨진 자들은 그녀가 천국의 아버지 곁으로 갔다고 믿기에, 그녀의 죽음이 슬픈 것이 아니란다. 단지 그녀 없이 살아갈 앞으로의 날들, 그녀를 그리워할 그날들이 슬플 뿐이라고.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큰딸 이민아 목사가 이 땅에서 떠나던 날, 그녀가 남긴 마지막 육성을 들었다.

지난 3월 15일, 새벽 4시. 의사가 사망 선고를 내렸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 제프 뷰캐넌 목사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미 의사도 포기한 심폐소생술을 하기 위해 아내의 가슴을 쳤다. 다시, 또다시…. 이미 숨이 끊어진 아내의 입술에, 암 투병으로 퉁퉁 부어 있는 그녀의 입술에 숨을 불어넣어도 봤다. 믿을 수가 없었다. 믿기지가 않았다. 그녀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그녀를 끌어안아보고 "보고 싶다"라고 외쳐도 소용이 없었다. 아직은 어린 세 아이, 자식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는 부모님, 늦게 만나 아름답게 사랑한 남편을 남겨두고, 그렇게 이민아 목사는 53세를 일기로 이 세상을 떠났다.

<table border="0" width="1"><table border="0" width="100%">

</table></table>죽음에서 자유로워지니 죽음이 두렵지 않더라

9개월 전, 기자와 만났을 때 그녀는 분명 "다 나았다"라고 했다. 갑상선암 수술을 세 차례나 받고, 실명의 위기도 있었지만 "이제 모두 괜찮아졌다"라고 했다. 병색이 완연한 낯빛이었지만 누구보다 티 한 점 없이 맑고 순수하게 웃는 모습이 그렇게 편안해 보일 수가 없었다. 인터뷰 당시 그녀는 허망하게 먼저 떠나보낸 첫째 아들을 생각하며 청소년 사역에 힘쓰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생의 마지막을 위한 준비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고(故) 이민아 목사는 참으로 시련 많은 삶을 살았다. 미국에서 검사, 변호사를 지냈으나 매일매일이 고난의 연속이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김한길 전 국회의원과의 사이에서 첫째 아들 유진을 낳았지만 결혼 5년 만에 이혼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재혼 후 두 명의 아들과 딸을 낳았지만 둘째 아들이 자폐 진단을 받으면서 가슴 아픈 시간을 보냈다. 더구나 김한길 전 의원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유진이 26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후 그녀는 삶의 의미마저 잃었다. 건강하던 아들이 원인도 모르는 병에 걸려 의식을 잃은 뒤 19일 만에 숨을 거두는 모습을 지켜본 이민아 목사는 더 이상 살아갈 힘이 없었다. 신앙의 힘으로 가까스로 일어난 그녀에게 또 다른 시련이 남아 있었다. 세 번의 갑상선암 수술로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었고, 실명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런 그녀였지만 기자와 만날 당시만 해도 수술과 치료로 혹은 성령의 치유로 삶의 의미를 되찾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녀는 이미 11개월 전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너무 야윈데다가 안색이 좋지는 않았지만 병마를 극복하고 회복되는 줄로만 알고 있었기에 기자에게 그녀의 부음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그녀는 예고된 죽음 앞에서도 어린아이같이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녀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너무도 무거웠다.

"아, 그때 왔던 기자로군요. 그래요. 그때도 많이 아팠었어요. 이미 1년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죠. 작년 그맘때가 항암제 맞고 잠시 소강 상태였던 때예요. 한 3개월은 괜찮았어요. 그때만 해도 뭔가 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또 금방 상태가 나빠졌어요."

고 이민아 목사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어머니, 강인숙 건국대학교 명예교수는 처연했다. 작년 초 위암 말기를 선고받고 죽음을 준비하는 딸의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이 어땠을까. 또 딸을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보내는 어머니의 심정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아니에요. 이 목사는 아주 행복하게 갔어요. 늘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했죠. 죽는 그 순간까지 행복하다고 했어요. 이제 하늘의 아버지 곁에서 더 큰 사랑과 행복을 얻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그러고 보니 고 이민아 목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지금은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사는 게 더 즐겁고 무서운 것이 없어졌죠."

하지만 딸의 죽음 앞에서 그녀의 아버지, 이어령 전 장관은 말을 잊었다. 그는 이 목사가 어릴 때부터 함께 시간을 보내주지 못했던, 바쁜 아버지였다. 하지만 평탄치 못한 큰딸의 인생 앞에서 그는 뒤늦게 모든 것을 깨달았다. 그는 딸에게 보낸 편지에서 "네가 애통하고 서러워할 때 내 머릿속의 지식은 건불에 지나지 않았고, 내 손에 쥔 지폐는 가랑잎보다 못하다는 걸 알았다"라고 고백했다. 자식의 고통 앞에서 의연할 수 있는 부모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는 최근 발간된 김정운 교수의 책 「남자의 물건」을 통해 마음속에 자리 잡은 딸에 대한 죄의식을 표현하기도 했다.

<table border="0" width="1"><table border="0" width="100%">

1 이민아 목사의 두 아들 에단과 루크, 딸 크리스티는 어머니의 운구 장면을 차마 지켜보지 못했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이들은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 급히 한국으로 들어왔다. 이민아 목사의 간증집 「땅 끝의 아이들」에서 둘째 아들의 자폐증이 완치됐다고 말한 것처럼 에단은 든든하고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 있었다. 2 이민아 목사와 사역활동을 함께 하던 그녀의 남편 제프 뷰캐넌 목사.

</table></table>"그의 딸은 아버지의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제대로 이야기 한번 해본 적이 없다. 이어령은 더 늦기 전에 '지상의 아버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자신의 딸이 믿는 '하늘의 아버지'를 함께 믿는다고 했다."
하지만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아버지의 품 안으로 돌아온 딸을 품을 수 있었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평탄치 못한 인생을 살아온 고단한 딸. 그래서 지난 1년간의 시간은 이들 부녀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었으리라.

마지막 순간까지 땅끝의 아이들에게 사랑과 희망 전했다


고 이민아 목사는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마지막을 청소년 사역에 불살랐다. 장례식장에는 그녀의 아들, 딸 또래 정도 됨직한 청년들이 눈에 띄었다. 이민아 목사의 영적인 자녀들이라고 했다. 모두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로 고통을 겪은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이민아 목사를 만나 세상의 빛을 보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친구들에게는 매일 맞기만 했어요.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된 왕따, 그게 바로 제 이야기였거든요. 이민아 목사님은 저에게 뜨거운 기도와 칭찬을 쏟아주셨죠. 덕분에 마음속의 상처를 꺼내놓을 수 있게 됐고 힘들었던 삶에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저는 지금껏 이렇게 큰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어요. 저를 낳아준 엄마한테서도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그분이 제게 주셨죠."

자신을 고 이민아 목사의 영적인 아들이라고 소개하는 허길향씨(32)는 "이민아 목사님은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까지 우리들의 손을 놓지 않았다"라고 했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을 만큼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끌어모아 타인을 위한 기도를 했다고.

"지난 2월 28일에 마지막 모임이 있었어요. 돌아가시기 겨우 보름 전이었죠. 예배를 하는 동안에는 '아픈 사람'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소녀 같고, 맑고, 에너지가 넘쳤어요. 불꽃같은 분이셨어요. 목사님이 마지막 말씀으로 연어 이야기를 하셨어요.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승리하는 신부(성직자)가 되라'라고 하셨죠. 당시 이 목사님은 이미 복수가 차서 서 있기조차 힘든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예배 중 쓰러지면서까지 그 자리를 뜨지 않으셨어요. 다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저희를 위해 기도해주셨죠. 마지막 순간까지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이민아 목사님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예요."

평온과 사랑 가득한 장례식

고 이민아 목사의 마지막 사역길에는 그의 남편 제프 뷰캐넌 목사가 늘 함께했다. 두 번의 결혼 실패 후, 신앙으로 하나 된 마음으로 만난 그들은 하와이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 아직 위암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전의 일이다. 이민아 목사가 병마와 힘겨운 싸움을 하는 동안 뷰캐넌 목사는 늘 그녀의 곁을 지켰다. 록 밴드 출신인 뷰캐넌 목사가 기타를 연주하고, 이민아 목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고 한다.

뷰캐넌 목사는 그녀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고, 낯선 타국의 장례 절차를 따르며 아내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아내의 빈소를 말없이 지키며 침착함을 유지한 그였지만 운구가 시작되는 순간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Just Let Her Go! Just Let Her Go…! Oh Jesus!" 그가 오열하자 조용한 찬송가가 울려 퍼지던 장례식장은 이내 울음바다가 됐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불태우며 세상의 꽃을 피우고자 했던 고 이민아 목사. 그녀의 꺾이지 않는 열정과 희망을 향한 정열은 젊은이들의 가슴속에 소중한 가르침으로 기억될 것이다.

<table border="1" width="100%">故 이민아 목사는…1959년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와 강인숙 건국대학교 명예교수의 1녀 2남 중 첫째로 태어났다.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조기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헤이스팅스 로스쿨에서 학위 및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캘리포니아주 검사로 임용돼 청소년 범죄 예방과 선도에 헌신했다. 1989년부터 2002년까지 LA 지역 검사를 역임했다. 1992년 세례를 받은 후 2009년 정식으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저서로는 「땅 끝의 아이들」, 「땅에서 하늘처럼」이 있다.

</table><■글 / 진혜린(객원기자) ■사진 / 박동민>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안타까운 것도 없다. 남겨진 자들은 그녀가 천국의 아버지 곁으로 갔다고 믿기에, 그녀의 죽음이 슬픈 것이 아니란다. 단지 그녀 없이 살아갈 앞으로의 날들, 그녀를 그리워할 그날들이 슬플 뿐이라고.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큰딸 이민아 목사가 이 땅에서 떠나던 날, 그녀가 남긴 마지막 육성을 들었다.

지난 3월 15일, 새벽 4시. 의사가 사망 선고를 내렸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 제프 뷰캐넌 목사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미 의사도 포기한 심폐소생술을 하기 위해 아내의 가슴을 쳤다. 다시, 또다시…. 이미 숨이 끊어진 아내의 입술에, 암 투병으로 퉁퉁 부어 있는 그녀의 입술에 숨을 불어넣어도 봤다. 믿을 수가 없었다. 믿기지가 않았다. 그녀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그녀를 끌어안아보고 "보고 싶다"라고 외쳐도 소용이 없었다. 아직은 어린 세 아이, 자식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는 부모님, 늦게 만나 아름답게 사랑한 남편을 남겨두고, 그렇게 이민아 목사는 53세를 일기로 이 세상을 떠났다.



죽음에서 자유로워지니 죽음이 두렵지 않더라

9개월 전, 기자와 만났을 때 그녀는 분명 "다 나았다"라고 했다. 갑상선암 수술을 세 차례나 받고, 실명의 위기도 있었지만 "이제 모두 괜찮아졌다"라고 했다. 병색이 완연한 낯빛이었지만 누구보다 티 한 점 없이 맑고 순수하게 웃는 모습이 그렇게 편안해 보일 수가 없었다. 인터뷰 당시 그녀는 허망하게 먼저 떠나보낸 첫째 아들을 생각하며 청소년 사역에 힘쓰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생의 마지막을 위한 준비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고(故) 이민아 목사는 참으로 시련 많은 삶을 살았다. 미국에서 검사, 변호사를 지냈으나 매일매일이 고난의 연속이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김한길 전 국회의원과의 사이에서 첫째 아들 유진을 낳았지만 결혼 5년 만에 이혼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재혼 후 두 명의 아들과 딸을 낳았지만 둘째 아들이 자폐 진단을 받으면서 가슴 아픈 시간을 보냈다. 더구나 김한길 전 의원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유진이 26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후 그녀는 삶의 의미마저 잃었다. 건강하던 아들이 원인도 모르는 병에 걸려 의식을 잃은 뒤 19일 만에 숨을 거두는 모습을 지켜본 이민아 목사는 더 이상 살아갈 힘이 없었다. 신앙의 힘으로 가까스로 일어난 그녀에게 또 다른 시련이 남아 있었다. 세 번의 갑상선암 수술로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었고, 실명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런 그녀였지만 기자와 만날 당시만 해도 수술과 치료로 혹은 성령의 치유로 삶의 의미를 되찾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녀는 이미 11개월 전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너무 야윈데다가 안색이 좋지는 않았지만 병마를 극복하고 회복되는 줄로만 알고 있었기에 기자에게 그녀의 부음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그녀는 예고된 죽음 앞에서도 어린아이같이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녀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너무도 무거웠다.

"아, 그때 왔던 기자로군요. 그래요. 그때도 많이 아팠었어요. 이미 1년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죠. 작년 그맘때가 항암제 맞고 잠시 소강 상태였던 때예요. 한 3개월은 괜찮았어요. 그때만 해도 뭔가 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또 금방 상태가 나빠졌어요."

고 이민아 목사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어머니, 강인숙 건국대학교 명예교수는 처연했다. 작년 초 위암 말기를 선고받고 죽음을 준비하는 딸의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이 어땠을까. 또 딸을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보내는 어머니의 심정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아니에요. 이 목사는 아주 행복하게 갔어요. 늘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했죠. 죽는 그 순간까지 행복하다고 했어요. 이제 하늘의 아버지 곁에서 더 큰 사랑과 행복을 얻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그러고 보니 고 이민아 목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지금은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사는 게 더 즐겁고 무서운 것이 없어졌죠."

하지만 딸의 죽음 앞에서 그녀의 아버지, 이어령 전 장관은 말을 잊었다. 그는 이 목사가 어릴 때부터 함께 시간을 보내주지 못했던, 바쁜 아버지였다. 하지만 평탄치 못한 큰딸의 인생 앞에서 그는 뒤늦게 모든 것을 깨달았다. 그는 딸에게 보낸 편지에서 "네가 애통하고 서러워할 때 내 머릿속의 지식은 건불에 지나지 않았고, 내 손에 쥔 지폐는 가랑잎보다 못하다는 걸 알았다"라고 고백했다. 자식의 고통 앞에서 의연할 수 있는 부모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는 최근 발간된 김정운 교수의 책 「남자의 물건」을 통해 마음속에 자리 잡은 딸에 대한 죄의식을 표현하기도 했다.



1 이민아 목사의 두 아들 에단과 루크, 딸 크리스티는 어머니의 운구 장면을 차마 지켜보지 못했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이들은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 급히 한국으로 들어왔다. 이민아 목사의 간증집 「땅 끝의 아이들」에서 둘째 아들의 자폐증이 완치됐다고 말한 것처럼 에단은 든든하고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 있었다. 2 이민아 목사와 사역활동을 함께 하던 그녀의 남편 제프 뷰캐넌 목사.

"그의 딸은 아버지의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제대로 이야기 한번 해본 적이 없다. 이어령은 더 늦기 전에 '지상의 아버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자신의 딸이 믿는 '하늘의 아버지'를 함께 믿는다고 했다."
하지만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아버지의 품 안으로 돌아온 딸을 품을 수 있었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평탄치 못한 인생을 살아온 고단한 딸. 그래서 지난 1년간의 시간은 이들 부녀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었으리라.

마지막 순간까지 땅끝의 아이들에게 사랑과 희망 전했다


고 이민아 목사는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마지막을 청소년 사역에 불살랐다. 장례식장에는 그녀의 아들, 딸 또래 정도 됨직한 청년들이 눈에 띄었다. 이민아 목사의 영적인 자녀들이라고 했다. 모두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로 고통을 겪은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이민아 목사를 만나 세상의 빛을 보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친구들에게는 매일 맞기만 했어요.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된 왕따, 그게 바로 제 이야기였거든요. 이민아 목사님은 저에게 뜨거운 기도와 칭찬을 쏟아주셨죠. 덕분에 마음속의 상처를 꺼내놓을 수 있게 됐고 힘들었던 삶에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저는 지금껏 이렇게 큰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어요. 저를 낳아준 엄마한테서도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그분이 제게 주셨죠."

자신을 고 이민아 목사의 영적인 아들이라고 소개하는 허길향씨(32)는 "이민아 목사님은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까지 우리들의 손을 놓지 않았다"라고 했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을 만큼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끌어모아 타인을 위한 기도를 했다고.

"지난 2월 28일에 마지막 모임이 있었어요. 돌아가시기 겨우 보름 전이었죠. 예배를 하는 동안에는 '아픈 사람'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소녀 같고, 맑고, 에너지가 넘쳤어요. 불꽃같은 분이셨어요. 목사님이 마지막 말씀으로 연어 이야기를 하셨어요.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승리하는 신부(성직자)가 되라'라고 하셨죠. 당시 이 목사님은 이미 복수가 차서 서 있기조차 힘든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예배 중 쓰러지면서까지 그 자리를 뜨지 않으셨어요. 다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저희를 위해 기도해주셨죠. 마지막 순간까지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이민아 목사님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예요."

평온과 사랑 가득한 장례식

고 이민아 목사의 마지막 사역길에는 그의 남편 제프 뷰캐넌 목사가 늘 함께했다. 두 번의 결혼 실패 후, 신앙으로 하나 된 마음으로 만난 그들은 하와이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 아직 위암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전의 일이다. 이민아 목사가 병마와 힘겨운 싸움을 하는 동안 뷰캐넌 목사는 늘 그녀의 곁을 지켰다. 록 밴드 출신인 뷰캐넌 목사가 기타를 연주하고, 이민아 목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고 한다.

뷰캐넌 목사는 그녀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고, 낯선 타국의 장례 절차를 따르며 아내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아내의 빈소를 말없이 지키며 침착함을 유지한 그였지만 운구가 시작되는 순간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Just Let Her Go! Just Let Her Go…! Oh Jesus!" 그가 오열하자 조용한 찬송가가 울려 퍼지던 장례식장은 이내 울음바다가 됐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불태우며 세상의 꽃을 피우고자 했던 고 이민아 목사. 그녀의 꺾이지 않는 열정과 희망을 향한 정열은 젊은이들의 가슴속에 소중한 가르침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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