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재호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요즘 서점에 가보면 패턴 백가지로 영어 완성하기, 일주일 만에 중국어 말하기, 이주 완성 일문법 등 외국어 학습서가 즐비한 것을 볼 수 있다. 중학교 때에는 안현필 선생의 삼위일체, 고등학교 때는 송성문 선생의 정통종합영어라는 참고서만을 바이블처럼 갖고 공부했던 우리에게는 금석지감을 느끼게 한다. 영어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고 무조건 많은 시간을 들이라고 배워왔고, 미국 유학시절을 포함해 수십 년 동안 끊임없이 영어를 읽고 듣고 가르치기까지 하면서도 한계를 느끼는데 과연 이런 요령으로 공부하면 외국어가 쉽게 마스터될 수 있을까?
지나치게 요령만 찾는 것은 아닌지
요즘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지나치게 요령 중심의 교육을 요구하기 때문에 당혹스러운 경우가 많다. 외국의 경우와 달리 어릴 때부터 다양한 사교육에 길들여진 우리 학생들은 대학 강의에서도 요점 정리를 기대하고 있다. 특히 파워 포인트를 사용해 정제화된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방식이 대학에서도 보편화되면서 학생들은 문제를 생각해보기 보다는 즉각적인 정보의 흡수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심지어 시험보기 전에 교수에게 찾아와서 일일이 요점을 체크하는 학생들까지 있다. 요점을 외우지 않으면 지식을 습득하지 못했다고 불안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래사회에서 더욱 돋보이는 지식은 암묵지라고 한다. 프로페셔널들은 일반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만 하면 흔히 가질 수 있는 형식지(形式知)를 뛰어 넘어 암묵지를 많이 갖고 있어야 남과 다른 뛰어난 문제해결 능력을 보이게 된다. 형식지는 객관화된 정보이기 때문에 정보화시대에는 도처에서 쉽게 그 지식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암묵지는 주관적이고 개인에게 내재화된 지식이기 때문에 쉽게 얻기 어렵다.
정보화 사회가 되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구글이나 네이버 등 다양한 검색엔진을 통해 객관화된 정보는 쉽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장인의 손맛과 같이 전문가들이 갖고 있는 내재화되어 감추어진 지식은 쉽게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그 지식의 넓이와 생각의 깊이 때문에 암묵지를 갖고 문제해결을 보다 잘하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로서 대접을 받고 존경을 받게 된다. 그러면 이러한 내재화된 암묵지는 어떻게 얻어지는가? 이것은 오랜 기간 독서와 사색을 거쳐 숙성된 지식을 통해서만 나오게 된다.
오랜 독서와 사색을 거쳐 숙성을 해야만
다산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서 보면 변지의(邊知意)라는 청년이 다산을 찾아와 문장(文章)을 이루는 법을 물었다. 다산은 그에게 “사람에게 있어서 문장은 풀이나 나무로 보면 아름다운 꽃과 같다 … 꽃을 급히 피어나게 할 수는 없다 … 경전과 예를 궁리하고 연구하여 진액이 오르도록 하고, 넓게 배우고 들으며 예능에 노닐어 가지나 잎이 돋아나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그 깨달은 것을 유추하여 쌓아두고 그 쌓아둔 것을 펼쳐내면 글이 이루어진다.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문장이 되었다고 인정하게 되니, 이것을 문장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문장이란 급하게 완성될 수는 없다.”라고 했다.
21세기에는 누구나 프로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요령만으로 프로가 될 수는 없다. 적은 시간의 투자로 효율적으로 지식을 습득하려는 것은 요령에 불과하다. 얄팍한 다이제스트 지식이나 널려 있는 형식지의 편린만을 축적해서는 프로페셔널한 문제해결 능력을 가질 수 없다. 폭넓은 지식의 섭렵과 깊이 있는 사고의 축적을 통해서만 자기 개인만이 가질 수 있는 암묵지의 생성이 비로소 가능해진다. 쓸데없는 일에 바쁘고 정작 중요한 시간 투자에는 요령만을 앞세우는 요즘 학생들의 공부는 한계가 있다. 이것은 다산 시대나 21세기 오늘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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